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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시선

태화관

최근 역사 강사인 설민석의 태화관에 관련된 언급이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분명 역사적 사실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할 수 있고, 그러한 논의의 다양성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유독 일제강점기 및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논의들은 불편한 충돌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근본적으로 반민족행위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하고 흘러온 역사에 대한 우리의 짐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설민석 강사의 언급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잘못되기만한 의견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역사를 가르치는 강사로서 학습의 효율성에만 초점을 둔 나머지, 이 역사적 장소가 갖는 역사적 맥락과 의미에 대한 설명들이 생략되어 발생한 논란 아닐까 생각한다.


태화관에 대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월관에 대해 우선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명월관은 명사와 한량들에게 편안한 장소와 푸짐한 음식을 대접한 요릿집의 대표격으로, 궁내부 주임관 및 전선사장으로 있었던 안순환이 궁중에서 나온 뒤인 1909년에 개업한 요릿집이었다. 안순환은 명월관을 개업하여 궁중요리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게 되었고, 술은 궁중 나인 출신이 담그는 술을 쓰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주, 소주 등을 팔았지만 나중에는 맥주와 정종 등 일본 술을 팔았다. 1909에 관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지방과 궁중의 각종 기생들이 방 붙일 곳을 찾아 서울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명월관에는 수많은 기생 중에서도 어전에 나가 춤과 노래를 불렀던 궁중기생과 인물이나 성품 및 재주가 뛰어난 명기들이 많이 모여들어 자연히 장사도 잘 되고 장안의 명사와 갑부들이 모여들어 일류 사교장이 되었다.


명월관


그러나 1918년에 명월관이 불타버렸는데, 화재 원인에 대해 당시 여러 이야기가 나돌았다. 친일정객들이 나라 팔아 받은 돈으로 거들먹거리던 곳이었기 때문에, 기생에게 욕본 고관의 분풀이 때문에, 가산을 탕진한 아들을 둔 시골 양반 때문에 불이 났다는 등의 이야기가 무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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